1. 두창이란 무엇인가: 역사 속 가장 치명적인 감염병 중 하나
두창(Smallpox)은 Variola virus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수천 년 동안 인류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질병입니다. 주로 사람 간 비말을 통해 전파되며, 얼굴과 몸에 심한 발진과 고열을 유발하고 사망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두창은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 발견된 병변을 통해 기원전 1000년 전후부터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며, 18세기 유럽에서는 유아 사망률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유럽인의 침입 이후 토착민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해 집단 절멸에 가까운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두창은 단순한 감염병을 넘어서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확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염병이었습니다.
두창은 단지 인류의 생명을 앗아간 전염병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사회 구조와 정치 질서까지 뒤흔든 파괴력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일부 학자는 두창이 유럽의 제국주의 팽창을 가능케 한 ‘바이러스 무기’였다고까지 말합니다. 중남미 아즈텍과 잉카 문명의 몰락에도 두창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두창의 유입은 지역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신앙, 문화, 경제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또한 두창의 반복적인 유행은 공포와 낙인을 낳았고, 환자와 가족에 대한 사회적 차별도 심각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두창은 단지 의학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안이었으며, 그 전파와 통제는 당시 국가 권력의 역량을 시험하는 지표로 작용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팬데믹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듯, 과거에도 두창은 ‘누가 죽고, 누가 보호받는가’를 결정짓는 정치의 대상이었던 셈입니다.
2. 감염 경로와 증상: 고열과 피부 병변의 특징
두창은 공기 중 비말, 감염자와의 직접 접촉, 감염된 물품을 통해 전파됩니다. 평균 잠복기는 12일 정도이며, 초기 증상으로는 고열, 두통, 심한 피로감, 구토 등이 나타납니다. 이후 1~2일 내에 얼굴과 팔다리를 중심으로 특유의 수포성 발진이 나타나며, 이 병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딱지로 변하고 피부에 깊은 흉터를 남깁니다. 두창의 특징은 병변이 비교적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주로 얼굴과 사지에 집중되며, 점차 몸통으로 확산된다는 점입니다. 또한 중증의 경우, 출혈성 두창으로 진행되면 내부 출혈과 함께 사망률이 90% 이상까지 올라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증상의 명확성과 높은 전염성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격리와 방역이 매우 엄격하게 시행되었습니다.
두창의 증상은 감염 후 빠르게 나타나는 전신 증상과, 이어지는 피부 병변이라는 두 가지 단계를 거치며 진행됩니다. 초기에는 인플루엔자와 유사한 전신 권태감이 주를 이루어 일반적인 감기나 열성 질환으로 오인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피부 병변이 등장하면 진단이 보다 용이해집니다. 이 병변은 단순한 발진이 아니라, 점점 농포로 변하고, 터지며 고름을 형성하고 결국 딱지가 되어 탈락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통증과 가려움증을 동반하며, 감염 부위가 깊은 흉터로 남을 수 있어 외모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특히 눈 주위에 병변이 생길 경우 실명 위험도 존재합니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병변이 모두 거의 동시에 같은 단계로 진행된다는 점인데, 이는 수두 등 다른 수포성 질환과 구별되는 중요한 진단 기준입니다. 이처럼 두창은 생존자에게도 장기적인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 심각한 감염병입니다.
3. 백신의 개발과 두창 퇴치: 인류 최초의 백신 성공 사례
두창은 인류가 최초로 백신을 통해 퇴치한 질병입니다. 1796년,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는 젖소에 감염되는 비교적 경미한 바이러스인 우두(Cowpox)를 이용해 백신을 개발했습니다. 그는 우두에 걸린 여성의 고름을 이용해 한 소년에게 접종한 후, 이후 두창 바이러스를 노출시켰을 때 감염되지 않았다는 실험을 통해 백신의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이는 '백신(vaccine)'이라는 단어의 기원이 되었으며, 이후 수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너의 발견은 당시 의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이후 수많은 나라에서 예방접종이 국가 차원에서 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 두창의 치명성과 감염력에 대한 위기의식이 더욱 고조되면서, 세계보건기구(WHO)는 1967년 '전 세계 두창 퇴치 프로그램(Smallpox Eradication Program)'을 공식 출범시켰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감염자 발생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접종과 추적, 격리 조치를 실시하였고, 백신의 보급과 접종 기록을 정밀하게 관리하는 체계를 도입했습니다. 특히 감염자 주변 인구를 대상으로 한 '고리 접종(ring vaccination)' 전략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며 전파를 차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결과 1977년 소말리아에서 마지막 자연 감염 사례가 보고되었고, WHO는 1980년 두창의 공식 퇴치를 선언하였습니다.
이러한 두창의 퇴치는 단순히 질병을 없앤 사건을 넘어서, 국제 사회의 협력과 과학기술의 힘이 결합해 인류가 처음으로 특정 감염병을 지구상에서 제거한 역사적 성취였습니다. 백신은 그저 의료 기술이 아닌, 공공보건의 집합적 의지와 체계적 행동의 상징이 되었으며, 이후 홍역, 소아마비, B형간염 등 다양한 질병 퇴치 운동의 롤모델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성과가 백신 보급의 형평성, 의료 접근성, 그리고 백신에 대한 신뢰가 충분히 확보된 환경에서만 가능하다는 교훈도 함께 남겼습니다.
4. 두창 바이러스의 보존과 생물학적 위협 논쟁
두창이 공식적으로 퇴치된 이후에도, 두창 바이러스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현재 이 바이러스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러시아의 국립바이러스학연구소 두 곳의 고위험 생물보안시설에 극히 제한된 형태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보관은 연구와 백신 개발, 바이러스 대비 전략 마련을 위해 유지되고 있으나, 동시에 심각한 생물안보 위협의 원인으로도 간주됩니다. 이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를 포함한 국제사회는 두창 바이러스의 완전 폐기를 둘러싸고 여러 차례 논쟁을 벌여왔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폐기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두창 바이러스가 언젠가 생물무기나 테러의 형태로 재등장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백신과 항바이러스제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일정량의 바이러스를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1년 미국 9·11 테러 이후 생물테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고, 탄저균 우편 테러 사건은 생물무기의 현실 가능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두창은 역사적 질병인 동시에, 현대적 안보의 핵심 의제로 다시 부상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현재의 생물학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두창 바이러스 자체를 인공적으로 복원하거나 합성할 수 있다는 기술적 가능성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2017년, 캐나다의 한 연구진이 비슷한 계열의 말두 바이러스를 합성한 사례는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만약 유출되거나 악용될 경우 그 피해는 과거의 두창 대유행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자아냈습니다. 이처럼 바이러스의 존재 여부 자체가 과학기술 발전과 보건윤리, 국제정치 안보를 동시에 가로지르는 복합적 쟁점이 되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감염병을 단순한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관리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5. 최근의 원숭이두창 확산과 두창 백신의 재조명
2022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원숭이두창(Monkeypox)의 유행은 이미 퇴치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두창 백신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주었습니다. 원숭이두창은 두창과 동일한 오르토폭스바이러스(Orthopoxvirus) 계열에 속하며, 주로 동물에서 사람에게 전파되는 인수공통감염병입니다. 전통적으로는 중앙 및 서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만 국지적으로 발생했지만, 2022년 이후 북미, 유럽, 아시아 등에서 사람 간 감염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글로벌 공중보건 위기로 번졌습니다. 감염자들은 발열, 림프절 종창, 수포성 발진 등의 증상을 보였으며, 일부 환자에서는 심각한 통증과 2차 감염 등의 합병증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확산 속에서 과거 두창 백신이 일정 부분 원숭이두창에 대해 교차면역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주목받았습니다. 실제로 과거 두창 백신 접종자들 가운데 일부는 감염 확률이 낮거나, 감염되더라도 증상이 경미하다는 보고가 이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기존의 두창 백신을 다시 제조하거나 비축 물량을 긴급 투입하여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예방접종을 시행했습니다. 특히 미국, 캐나다, 유럽 국가들은 '3세대 두창 백신'이라 불리는 비복제형 백신(JYNNEOS, IMVANEX 등)을 사용하여 원숭이두창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백신 전략은 새로운 윤리적·정치적 문제도 불러왔습니다. 백신 공급이 선진국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아프리카나 남반구 국가들은 백신 접근권에서 다시금 소외되었습니다. 이는 코로나19 당시 백신 민족주의와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으며, 국제 보건 체계의 불균형 문제를 재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원숭이두창이 일부 집단(특히 남성 간 성관계를 가진 남성 등)에 집중된 감염 패턴을 보이면서, 낙인과 혐오, 잘못된 정보 확산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복합적 맥락은 감염병 대응이 단순히 의학적 조치에 그쳐서는 안 되며, 감염병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과 구조적 불평등을 함께 고려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두창 백신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질병의 정치학”을 성찰하게 만드는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6. 두창 퇴치의 교훈: 글로벌 공중보건 협력의 가능성과 한계
두창의 퇴치는 인류가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협력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67년부터 두창 퇴치를 위한 전 세계적인 백신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이는 국제 보건 역사상 가장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백신 프로그램 중 하나였습니다. 선진국은 백신을 제공하고 의료 인력을 파견했으며, 개발도상국은 지역 기반의 접종 및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며 이에 호응했습니다. 그 결과 1980년 WHO는 두창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완전히 퇴치된 전염병이 되었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이 퇴치는 백신의 과학적 효능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공중보건 협력과 대응 체계의 결과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공은 단순한 기술의 승리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와 국제적 연대가 결합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창 퇴치 프로그램이 진행되던 시기에도 여러 국가에서는 내전, 정치 불안, 의료 인프라 부족 등으로 접종률이 낮은 지역이 많았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WHO는 현지 사정에 맞는 '고리 접종 전략'을 개발했고, 감염자가 발견되면 즉각 주변 인구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방식으로 전파를 차단했습니다. 이러한 유연한 대응이 퇴치의 핵심 열쇠였던 셈입니다.
더불어, 두창 퇴치는 백신에 대한 신뢰, 질병 감시에 대한 시민들의 협조, 보건 시스템의 공공성 확보 등 다양한 요인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라는 점도 시사합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드러났듯, 백신을 둘러싼 정보 불신, 정치적 갈등, 자원 배분의 불평등은 감염병 대응의 큰 장애물이 됩니다. 두창의 사례는 ‘질병의 종식’이 단지 과학 기술의 문제가 아닌, 인류가 연대하고 협력하며 사회적 신뢰를 구축해나갈 수 있을 때 가능한 목표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기후 위기, 새로운 팬데믹 가능성, 보건 불평등 문제에 대한 대응 전략에서도 이러한 집합적 기억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